2009년 5월 23일 토요일

대한민국에서는 추모는 불법인 모양이다

덕수궁쪽에 시민들이 분향소를 마련한 모양인데, 봉쇄하고 있는 모양.

...내 알기로 관혼상제에 해당되는 모임은 집시법 적용대상이 아닌걸로 기억하는데, 도대체 무슨 법을 근거로 저러는지 모르겠다.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왠일로 동생님이 문자를 넣었는데, 이게 웬걸. 노무현이 죽었다니!

농담하나 싶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아주 난리도 아니다.

과가 큰 인물이긴 하지만, 공이 큰 인물인 것 역시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가다니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9년 5월 20일 수요일

21세기 발본색원

"자꾸 소매치기 사건이 일어나요"
"그럼 모든 사람의 손을 자르라"

"뉴스만 틀면 유괴/납치 뉴스가 나와서 무서워요"
"그럼 모든 사람은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

"요새 성범죄가 늘고 있대요"
"그럼 모든 사람은 생식기관을 제거하라"

"디지털 컨텐츠 불법복제가 판을치고 있어요"
"그럼 모든 컴퓨터를 수거하라"








"불법 폭력 시위가 싫어요"
"그럼 모든 시위를 못하게 하라"

경찰 ‘집회와 전쟁하듯’ 초강경 대응

정부가 불법폭력시위를 싫어하는거야 뭐 당연한 일이긴 한데, 대응이 뭔가 좀 이상하다.


현직 작가 지망생의 증언

현직 작가 지망생이라고 하니까 말이 좀 이상한데, 그분은 게임 스토리 작가로 월급을 받고 있고 몇달 후면 모 만화 스토리 작가에 취임(?)하긴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게임 작가나 만화 작가에는 뜻이 없으며 자신이 뜻을 두고 있는 소설 작가로서는 아직 성공을 못한 상태다.  게임 작가라는 것도 인터넷에 쓴 소설이 잘 되어서 스카웃 된 케이스.  그러니 현직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이 굳이 틀린 말은 아니리라.

웹게임상에서 출간에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이 작가로서 쓰고 싶은 글에 출판사에서는 상업적인 이유를 들어 계속 태클을 걸더라는 뭐 어찌보면 흔하디 흔한 이야기. 그런데, 그 태클의 내용이 좀 놀라웠다.

이하는 증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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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판타지 출판사에서 꼭 요구하는 게 있어요.
1. 3만자 이내에 환골탈태나 레어 아이템 획득.
2. 8만자(반 권) 이내에 2인 이상의 히로인 등장.
3. 1권이내에 주인공에 복종하는 먼치킨 드래곤 출몰.
4. 2권 이내에 영지 혹은 국가 확보.(엄청난 재력 포함.)
이대로 쓴다면, 출판은 절반이상 보장입니다.
필력이 좀 딸린데도 말이지요.
지금 전국에 대여점이 4000개 정도에요.
일단 이렇게만 쓴다면 4000권은 확보란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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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문체와 호흡 이야기만 했었다. 요즘 세상에는 호흡 빠른 글들이 잘팔리더라, 그래서 출판사에서 계속 내용전개를 더 빠르게 해라라고 요구하더란 이야기. 뭐 그정도야 당연히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요구내용이 꽤나 구체적이다 --;;; 업계인이 아닌 나로서는 그냥 막연히 작가가 쓴 글을 상업으로 알맞게 가다듬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현재 양판소시장은 아예 상업적인 목표가 먼저 나오고 여기에 맞춘 글만 인쇄한다는 이야기.

...뭐랄까, 대본소 체제의 활자화로 보인다.

나도 취직 안되면 저 공식에 맞춰서 대충 글을 한번 휘갈겨 볼까나?
...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필력이 좀 딸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 수준이고나. OTL

2009년 5월 3일 일요일

중원의 지배자와 한반도

중국사회와 이해 중간 고사 대체 에쎄이. 저장용, 저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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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지배자와 한반도


한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지역은 역시 황하와 장강(양자강)유역을 아우르는 지역(이하 중원)이다.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다. 티벳, 몽골, 베트남,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속한 모든 지역은 중원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왔다. 한자 자체가 중원의 산물이 아니던가. 말하자면 한자문화권의 원류가 중원인 셈이다.

게다가, 중원은 유럽 문명의 본원인 그리스-로마와는 다르다. 그리스는 로마의 발흥 이후 유럽에서 중심지역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했고 이탈리아 역시 서로마의 멸망 이후에는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한 대 이후 줄곧 동아시아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역으로서의 위치를 놓친 적이 없다. 넓은 평야지대와 많은 인구, 이로 인한 막대한 경제력은 중원이 항상 동아시아의 중심지역 노릇을 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중국 역사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족(漢族)이다. 그런데 정작 한족이 중원을 장악하고 있을 때 보다는 이민족이 중원을 장악하고 있을 때 그 세력이 확장되고 문화적 영향력이 증대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적어도 춘추전국시대 이후로는 하나의 법칙처럼 보인다.

춘추 시대 초기 패자는 진(晉)나라 등 전통적인 중원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제후였지만 전국시대 말기의 양대 강국은 초(楚)와 진(秦)이라는 이민족 국가이다. 그리고 춘추시대만 하더라도 오랑캐 취급받던 진나라에 의해 전국칠웅이 정리된 이후 중원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황하 중류지역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관중지방과 장강 유역까지를 포함하는 공간이 되었다.

진나라의 뒤를 이은 한족 국가인 한(漢)나라는 내부적으로는 한족 전통 문화를 확립하기는 했지만, 주변국가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서역 경영은 일시적인 것에 그쳤고, 낙랑군 설치도 설치 이후 거의 방치와 다름없는 상태였으며 흉노와의 전쟁은 승 보다는 패가 더 많았다. 한나라의 영역은 남흉노 세력이 한나라에 항복하기 이전까지는 진나라의 영토보다 넓었다고 보기 힘들다. 그나마도 장강 이남의 지역에 대한 장악력은 진나라때 보다도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나라 멸망 후 오랜 혼란기를 잠재운 왕조는 수(隋)․당(唐)제국이다. 수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이민족 국가이고 당나라 역시 황족을 비롯한 핵심 지배집단은 선비족 계통의 관롱집단이다. 그리고 당대에 이르러 중원은 동북아시아의 패자로서의 위치를 확정짓는다. 율령체제, 성명체제, 유․불교 등 동북아시아 전통사회를 특징짓는 많은 것들이 당나라에 의해 중원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중원은 동북아시아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는 한족 왕조인 송나라인데,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약체로 평가받는 왕조이다. 실제 예산 집행을 보면 군비에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 붇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금이나 요에 늘상 밀리기만 했다. 송대에 정립된 신유학(성리학)은 이후 조선의 국교가 되었지만, 적어도 송대에는 송의 유학은 고려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 다음은 다시 이민족인 원 왕조이다. 몽골 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원 왕조는 말하자면 몽골 제국 황실의 직할령과도 같다. 원 왕조의 영역은 전통적인 중원 지역 이외에도 티벳과 타림분지, 인도차이나반도 북부(베트남과 미얀마 북부 등), 몽골초원 등에 이르렀으니 그 이전 중원의 그 어떤 왕조보다도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원 왕조 이후에는 다시 한족 국가인 명나라가 세워졌는데, 명나라는 대외적으로 폐쇄적인 정책을 펴면서 스스로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명의 뒤를 이은 이민족 국가인 청은 티벳과 몽골을 장악하면서 원 왕조 영역과 거의 비슷한 영토를 가진다.

즉, 진․한, 수․당, 송, 원, 명․청 등의 왕조 교체를 거시적으로 보자면 그 이전시대보다 영역이 넓어지는 시기는 항상 한족국가의 뒤를 이은 이민족 국가 시기이다.

시점을 중원이 아닌 한반도로 돌려보자. 한반도에 이제 막 철기가 보급되던 시기인 한나라 때를 제외하고서는, 중국을 이민족이 장악하면 한반도는 피곤했지만 중원을 한족이 장악하면 한반도는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4세기말 이후 한반도에서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하고 한강 유역을 신라에 빼앗긴 이후에도 동북아의 강자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았던 고구려는 수․당의 잇따른 공격에 결국 스러지고 만다. 삼국시대 초기에 융성했던 백제 역시 고구려에 조금 앞서 멸망했다.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오늘날 한자문화권이 한자문화권으로 편입된 시기가 당나라 때 일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인이 중국식 성명체계를 널리 사용하게 된 때가 당나라 때 일이고 한국인의 심성에 깊숙이 뿌리내린 유학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한 것도 당나라 때 일이다. 말하자면 한반도 입장에서는 중원의 주인이 정해지지 않던 동안 끼리끼리 부대끼면서 살다가 중원의 주인으로 당나라가 등장하면서 백제와 고구려라는 두 개의 왕조가 멸망해 버리고 살아남은 신라도 중원의 영향을 크게 받기 시작한 셈이다.

당 멸망 이후에는 5대10국을 거쳐 한족 왕조인 송이 등장하는데, 이 시기 고려의 근심은 중원에 있지 않았다. 고려의 근심은 요나 금 같은 북방으로 향해 있었으며, 송으로부터의 군사적인 위협은 없었다. 고려와 송 사이에 요나 금이 없어서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베트남의 사례를 볼 때(베트남은 한나라에게 정복당한 이후 중국세력에 의해 통치되다가 10세기 즈음 베트남 왕조가 등장한다) 고려가 송으로부터 위협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려로서는 적당히 황제로서의 예우만 해 주면 간섭을 하지 않는(사실상 할 능력이 없는) 송나라만큼 편한 상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계통의 원 왕조가 등장하면서 고려는 30년간 몽골과 투닥거린 끝에 몽골에 항복하게 된다. 30년간 입은 전화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로도 고려는 일본원정참여 강요와 과도한 공물 등으로 많은 것을 잃는다. 송나라 때에 비하자면 원나라 때의 고려는 고난의 세월을 보낸 셈이다.
이후 중원에 명 왕조가 들어서면서 한반도에는 조선이 건국되는데, 명은 분명 송 보다는 조선에 대한 간섭이 많았지만 원이나 그 이후 등장할 청에 비하자면 확실히 조선에겐 편한 상대였다. 명과는 전쟁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임진왜란 때 도움을 얻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이후 등장한 만주족 왕조인 청은 조선에 삼전도의 굴욕을 안기고 그 이후로도 매년 공물을 요구한다. 명이나 송이 요구한 조공이 기본적으로 중원의 황제가 손해를 보는 형태였지만, 원이나 청이 요구한 공물은 분명 한반도가 손해를 보는 형태다.

즉, 대체로 중원의 패자가 한족일 경우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편하고 이민족일 경우 한반도는 피곤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아마도 한족 특유의 중화사상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한족에게 있어서 중원은 곧 천하이며 그 외부세계는 오랑캐들의 세계로서 관심 밖이다. 그나마 중원이 척박한 지역이라면 외부로 눈을 돌리겠지만, 중원은 동북아시아의 경제 중심지이고, 세계적으로 보아도 경제력이 높은 지역이다. 이 때문인지 한족들은 중원 내부의 패권을 확립하고 나면 그 무력을 외부로 투사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부세계로부터 중원 왕조의 권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많지만, 굳이 직접 지배를 하려고 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흉노와의 싸움을 위해 그 날개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던 한나라 정도다. 그나마 한나라도 흉노전쟁 이후에는 서역경영에 흥미를 잃고, 고조선에 대해서는 아예 정복 직후 4군을 설치한 후에 관심을 끊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원 주변 세계의 입장에서는 중원의 권위만 인정하면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민족들에게 있어서 중원은 수많은 지역 중 하나일 뿐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가장 경제력이 높은 지역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원이 곧 천하의 전부는 아니다. 중원을 정복한 이민족이 그 경제력을 무력으로 전환하여 다시 정복전쟁에 나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은 중원을 장악한 이후로도 수많은 정복전쟁을 벌였고 원나라는 아예 정복국가 그 자체인 몽골제국의 일원이다. 청 역시 중원을 장악한 데 만족하지 않고 계속 정복활동을 벌여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왕조로 기록된다. 그리고 한반도 입장에서는 중원의 거대한 경제력으로 뒷받침되는 무력과의 대치는 대단히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중원의 지배 민족은 누구일까? 물론 중원의 지배민족은 한족이다. 그러나 중원이 아닌 중국이라는 국가의 의사를 한족이 독단적으로 결정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일단, 중국의 핵심민족이 한족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상황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중국의 국가이념이다. 중국은 한족과 한족에 정복된 민족들의 국가가 아니라 핵심민족인 한족 및 소수민족들의 연합체라는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역사공정을 통해서 중국민족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다. 중국민족 만들기가 성공한다면, 기존의 민족은 소멸하며 따라서 한족에 의한 중원지배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중국민족의 원형은 56개 민족연합이라기 보다는 한족과 한족에 포섭된 55개 소수민족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국민족은 한족과 다른 민족이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송나라의 명장 악비에 대한 평가가 최근 계속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민족의 출현과 관계가 깊다. 한족 입장에서는 이민족에 대항한 민족의 영웅이지만, 새로이 만들어지는 중국민족이라는 입장에서 보자면 내전에서 활약한 수많은 장수 중 조금 유능한 사람일 뿐이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지배 민족이 누구인가는 큰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중국의 중화사상이 어떤 형태로 발현될 것인가이다. 앞서 한족 왕조가 한반도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은 이유는 한족이 천하를 중원으로 한정지었기 때문이라고 서술하였다.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국민족은 중화사상을 가지고 있을까? 보다 범위를 좁혀서, 중국민족은 자신들의 세계 외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성향을 그대로 가질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중국민족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세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는 앞으로 한국의 안보 혹은 정체성에 관하여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한다. 에쎄이 수준에서 이야기 하자면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중국민족이 성공적으로 만들어 지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한족의 중국은 그 역량을 내부에 쏟는 경향이 있기에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중국민족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그 거대한 인구와 이에서 비롯되는 역량이 외부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한족에게는 중원 이외의 땅은 한낱 오랑캐 땅이라지만, 중국민족도 동일한 인식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 경우 주변 국가로서는 심각한 안보위협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중국민족의 등장은 단순히 안보위협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실, 현대에 와서는 영토를 얻기 위한 정복전쟁은 일어나기 힘들다. 중국 민족 자체가 중원 뿐만 아니라 내몽골, 만주, 티벳, 위구르 등 중원 바깥 지역의 민족을 통합한 개념인 만큼, 현재의 중국 외부의 민족도 통합하고자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크나큰 문화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영향을 받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자신만의 문화를 고집하는 것은 고루해지고 쇠락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정치적 영향력에 의한 문화적 영향이란 대개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을 버리는 형태라기보다는 무조건 따라가기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중국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신라가 당나라의 성명체계를 받아들였고 원에 항복한 이후의 한반도 정권이 정권 정통성을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생기듯이 한국인의 정체성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정리하자면 중국민족의 부상은 한국에게 있어 크나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한국은 이를 예의주시하고 그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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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말했다.
"이딴 쓰레기를 뱉어낸 손꾸락은 누구 손꾸락이냣!"
손가락이 말했다.
"..."(말없이 입을 가르킨다)


아놔... 조낸 쪽팔리는 글. 명색이 고학번인데 이건 무슨 고딩수준의 글이구만.

작년에 레폿을 쓰고 바로 블로그에 올렸더니만 조교님하가 "니글 인터넷에서 봤삼. 어찌된거임?" 이러길래 이번엔 아예 사나흘쯤 묵혀두고 올린다.